미주의 인상
평범한 체험기가 아니라 미국 유학하는 조선인이 영어로 써서 1916년 미국에서 나온 미국 유학 체험이다. 조선 최초로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빨간 하드 커버를 펼치면 벽지 같은 연두빛 안이 나온다. 그리고 오래된 원서 느낌대로 원서 부분은 끝이 바랜 노란 종이,처음 부터 참 예쁘고 편하고 배려심 있는 책이다.책에서는 한국인이라고 말했지만 그땐 한국이 없었으므로 조선인이 맞아서 그래서 나는 조선이라고 쓰겠다.개성 한영서원 출신으로 당대의 미국통, 매우 다면적인 삶을 살았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의 삶이었다고 한다. 이분은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미주 인상기(1916)는 미국의 민주주의 가치와 대중 문화에 긍정적이다. 이 시대를 말할 때 식민지 조선 청년이 정의감과 애국심에 불타서 고국 현실을 생각하며 울분에 떨고 얼른 조국을 계몽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밤을 지새며 ....이런 것은 없다.그렇다고 이분이 당시 오렌지라는 말이 아니다. 격함,투쟁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런 식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재치와 위트,유모어가 있는 글이다. 귀국후 매일신보(1918)에 일부를 번역 연재, 이 책에도 번역과 원서 문체를 비교 해놓았다.영어의 원 느낌,유모어를 옮길수는 없었다. 매일 신보 글이 재밌다. 그때도 조선 말 같은 글이다. 그때 신문 글은 조사 외에 한글은 없고 다 한자이다.그의 삶은 여행이 활력 자체였다. 곧 동아일보 창간때 개인적 친분의 인연을 연결하여 중국 명사들의 휘호와 축하 메시지를 받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창간때 동아일보 기자,) 1921년 만국 기자대회에서 부의장으로 선출(이때 사진이 책 소개에 있다. 미국 유명 작가도 옆에 있는데 아주 키 크고 미남이다.) 1922년 동아일보사 초대 미국 특파원 등등....최초의 수식어는 그의 일생 내내 이어진다. 그의 미국 느낌은 1909년 뉴욕항에 도착으로 시작한다. 멀리서 처음 뉴욕항을 보고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느꼈으나 빌딩들이었다. 산맥이라는 말은 처음 봤는데 기발하다. 정말 그랬을것이다.(그래도 한번은 3등실에서 보내다가 힘들어서 2등실로는 올수 있었다니,,,부자가 아닌 평범한 나라없는 조선인도 그렇게 매순간 찢어지게 눈물짓는 인생은 아니었다.1930년대말 전쟁으로 돌입하니까 많이 힘들어졌다.책과 상관없는 내 느낌)먼 대륙이 배로 만나게 된 교통의 편리함에 놀랐다. 지금도 뉴욕을 처음 보면 그럴텐데 그때는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미국을 자유,젊음,배움으로 만끽했다. 책 속 그림이 꼭 미국인의 그림 같다. 비슷한 그림이 어릴때 본 키다리 아저씨이다. 같은 시대이기도 하고 그림도 비슷하다.김동성 본인의 그림이다. 미술학교에서도 수학했다.미국 남부 아칸소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 미국 남부를 말할때는 정말 미국 남부인 같다. 여기서도 미국 소설에서 좋은 말로 해서 그렇지않을까? 했는데 남부는 정말 그랬나보다.미국의 법치,자유를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대통령도 법에 평등, 봉건 조선 구한말 급기야 나라 뺏긴 작은 동양에서 온 젊은이 눈에 미국의 자유 평등은 어땠을까. 미국 생활에서 미국의 자유, 개방성,사람에 대한 수준 높은 배려,문명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에 유학갔던 선각자들 삶을 봤을때 내가 그분들이었다면 거기 살지, 왜 찢어지게 가난하고 초라한 고생하는 곳에 돌아왔을까...항상 약간 그랬지만 그래서 그분들이 존경스럽다."미국 평범한 가정의 성실하고 애정있는 생활,미국인들이 법앞에 평등과 자유를 만끽함("법원이건 개인이건 남을 짓밟거나 이용해먹지않는다. 구두닦이,상류층 모두 백만장자만큼의 자유가 있다.")김동성씨는 이 두가지를 미국에서 가장 좋은 점으로 꼽으신것 같다.미국에서 돌아온 후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번역가, 언론인, 정치인등 아주 다양하고 복된 일생을 사신것 같다. 얼굴도 욕심이 없고 깨끗하게 사신 분 같다.한 개인 일생으로도 존경받을만하고 부러운 삶을 사시다 가셨다.책 순서는 원서(1916)-매일 신보 연재(1918)-미국 언론 리뷰(1916)-해설 소년 김동성은 고향 개성에서 황성신문을 통해 조선의 현실과 근대 문화에 눈뜸,1905년 전후로 여러 연설회를 찾아다니며 신교육,계몽사상을 접하고 안창호,이동휘 연설을 듣고 감동받아 소년이면서도 한영서원 유치에 숨은 노력을 하여 성공한다.1908년 중국,1909년 미국 유학 10년의 미국 유학후 귀국,동아일보 창간에 참여.....각도는 다르겠지만 막 청년이 된 김동성이 보았을 뉴욕,1906년 사진
한 조선 청년이 뉴욕 항에 도착했다. 그의 이름, 김동성. 약관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10년의 유학을 마치며 한 권의 책을 영문으로 출간했다.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 우리말로 옮기면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 다. 신시내티의 아빙돈 출판사(The Abingdon Press)에서 1916년에 ‘Dong Sung Kim’이라는 저자명으로 발간된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발간한 영문 단행본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주의 인상 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1916년 미국에서 발간된 영문 단행본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를 저자 김동성이 직접 우리말로 옮긴 말이다. 김동성은 귀국 후인 1918년 2월, 당시 한국어 일간신문이었던 ≪매일신보≫ 에 자신이 미국에서 펴낸 책의 일부를 국한문체로 직접 번역해 5회에 걸쳐 연재했다. 당시의 연재명이 바로 ‘미주의 인상(米洲의 印象)’이었다. 이 책은 제1부에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 를 영어에서 현대 우리말로 옮겨 실었고, 제2부에 1918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미주의 인상〉을 당시 국한문체에서 현대 우리말로 옮겨 수록했다. 이 제2부는 저자 자신의 번역을 수록하고 있어 번역사에도 가치 있는 자료이다. 제3부는 1916년 영문 책자가 출간되었을 당시 미국 언론에 실린 서평을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겨 실었으며, 이 책의 번역자이자 해설자인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의 해제를 덧붙였다. 또한 김동성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기 위해 그의 유학과 삶의 궤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사진 및 그림을 본문 앞쪽에 배치했다.
미주의 인상 을 펴내며
사진으로 보는 천리구 김동성
제1부 김동성의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 (1916)
감사의 말 | 머리말 | 서문 | 우리의 미국 여행 | 도시 | 시골 생활 | 교회 다니기 | 미국의 가정 | 춤 | 자동차 | 옷 | 개구리 다리 | 사고 | 우편배달부 | 사랑 | 여성 참정권 | 대학 사교 모임 | 대학 생활 | 야구 | 풋볼 | 대통령 | 남부 | 자유 | 유명한 미국인들 | 작가들 | 공공 도서관 | 신문
제2부 ≪매일신보≫의 <미주의 인상>(1918)
도미 | 시가지 | 도서관 | 의복 | 음식
제3부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 에 대한 미국 언론 리뷰
≪캔자스시티 스타≫ | ≪보스턴 저널≫ | ≪아이다호 스테이츠먼≫
해설
문화번역가 천리구 김동성, 그 동서 편력의 첫 화첩
한국인 최초의 영문 단행본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 에 대해 | 황호덕